한국어문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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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6 13:24
[문화일보] [오후여담] 계란과 달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82301033811000002 [2]

계란의 정체성은 생명이다. 병아리라는 새 생명체인가 하면, 인간의 건강을 돕는 먹거리로서의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께 0.5㎜에 93.7%의 무기염류 성분으로 된 껍데기의 보호를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안에서는 0.02㎜ 두께의 이중 막이 감싸고 있다. 병아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따뜻이 날개깃으로 품어주고 아기의 부름에 화답해 바깥에서 부리로 알을 쪼아주는 어미의 사랑이 필요하다. 하늘 같고 바다 같은 난익지덕(卵翼之德) 말이다.

영양 덩어리 계란은 일상의 잣대이기도 했다. 우박의 크기로 비유됐는가 하면, 멀리 서력기원 훨씬 이전에는 관리 임용의 준거가 되기도 했다. 중국 전국시대 위(衛)나라 때 일이다. 관리 임용 부적격 요건 중에는 계란과 관련한 항목이 있었다. 왕이 아무리 아끼는 ‘코드 인재’라 하더라도 백성의 계란 2개를 거저 얻어먹은 과실이 있는 경우 관리 임용의 결격 사유가 됐다. 이란견기자(二卵見棄者)라는 이 고사(故事)는 조선 문종실록 1450년 4월 30일 자에도 나온다.

흔히,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계란이나 달걀이나’ 하고 말한다. 하지만 국어의 관점에서는 순화어 여부로 뚜렷이 구분된다. ‘계란’은 ‘달걀’로 순화되기 전의 용어인 까닭이다. 1983년 문교부에서는 될 수 있으면 순화어 달걀을 쓰라고 권장했고, 1992년 총무처에서는 계란과 달걀 모두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1997년 국어순화자료집에서는 순화어 달걀을 쓰도록 권하고 있다. 달걀을 품고 계란은 내친 것이다. 북한에서는 1954년 이래 ‘닭알’이 그들의 표준어, 곧 문화어다. 중국에서는 계란(鷄卵)을 지롼(鷄卵) 또는 지단(鷄蛋)이라고 쓴다. 한자 ‘알 란(卵)’은 닭의 알도 가리키지만 물고기나 개구리 따위의 알을 뜻하고, ‘새알 단(蛋)’은 닭을 비롯한 새와 거북·뱀 등의 알을 지칭한다.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는 대통령의 ‘송구하다’는 대국민 사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은폐하고 있다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후유증이 커졌다. 이번 사태는 또 하나의 생채기를 남겼다. 순화어 달걀로 쓰라고 권장한 국어사전을 다시 손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알껍데기’라고 했으면 됐을 것을 굳이 ‘난각(卵殼)’이란 용어를 꺼내어 널리 퍼뜨렸다…. 언어 오염은 달걀 오염보다 파장이 깊고 길다.
 


황성규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3일(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