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문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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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4 15:33
[부산일보] [바른말 광] 아쉬워라 표준사전⑮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121618093500982 [1]

*존폐(存廢): 존속과 폐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기구의 존폐를 논하다./금융 위기가 닥치자 우리 회사는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에 실린 뜻풀이다. 한데, 보기글에 나온 ‘존폐의 위기’는 말이 안 된다. ‘존폐’는 ‘존속과 폐지’를 아울러 가리키는데, 폐지라면 몰라도 존속이 위기일 수는 없기 때문. 그러니 보기글은 ‘우리 회사는 폐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우리 회사는 문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쯤이라야 했다. 굳이 ‘존폐’를 쓰고 싶다면 ‘존폐의 기로’ 정도면 될 터.

존폐와 비슷한 ‘존망’ 또한 마찬가지여서 ‘존망의 위기’라고 하면 안 된다. 아래는 표준사전 뜻풀이.

*존망(存亡): 존속과 멸망 또는 생존과 사망을 아울러 이르는 말.(국가의 존망은 젊은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이것은 당신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처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쓸 땐 과잉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표준사전을 보자.

*여부(與否):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사실 여부를 확인하다./생사 여부를 묻다./먼저 도착한 가족들은 아들, 남편,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생사 여부를 알려고 아우성쳤다.〈유현종, 들불〉)

‘여부’가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을 아우르는 말이므로 뜻풀이에 나온 ‘사실 여부’는 ‘사실이냐, 아니냐’이므로 말이 된다. 하지만 ‘생사 여부’는 ‘생사’와 ‘여부’가 각각이므로 경우의 수가 ‘생-여, 생-부, 사-여, 사-부’로 4가지나 되는 것.(게다가 ‘생-여, 사-부’와 ‘생-부, 사-여’는 같은 뜻이다.) 뭘 저리 복잡하게 물어야 할까. 그냥 ‘생사’만 묻거나 ‘살았는지 여부’, 혹은 ‘살았는지’만 물으면 될 터인데….

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건 ‘고지’라 한다. 한데, 표준사전의 이런 뜻풀이는 이상하다.

*박고지: 여물지 아니한 박의 속을 파내어 길게 오려서 말린 반찬거리.

이러면, 박고지 재료는 씨가 박혀 있는 하얀 부분, 즉 ‘박속’이 된다. 하지만, 얇게 썰거나 길게 오려서 말리는 건 속을 파내고 남은 부분인 것. 박속은 그냥 긁어내 버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표준사전 뜻풀이는 이래야 했다.

*박고지: 여물지 아니한 박을 속을 빼버린 다음 오려서 말린 반찬거리.(〈우리말 큰사전〉 한글학회)

*박고지: 박의 속을 빼어 버리고 길게 오려서 말린 반찬거리.(〈국어대사전〉 민중서림)

사전이 발행된 해를 생각하면 표준사전은 뒷걸음질을 친 셈.



이진원 교열부장
jinwoni@busan.com
입력 : 2020-12-16 18:11:47 수정 : 2020-12-16 18: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