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문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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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4 17:12
[조선일보] [양해원의 말글 탐험] '사임토록 하겠다'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6/2018042603498.htm… [15]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군대 선임들. 같이 지내면서 그 노래깨나 불렀으니까. 잘해서가 아니라 가락이 좋아 시켰겠지. 그 목련이 벙근 지도 얼마 안 돼 꽃을 떨궈버렸다. 올봄 유난히 헤벌쭉하더라니…. 인간 세상에서도 이 즈음 엇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중략)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습니다.' 대통령 이름으로 나온 이른바 '입장문(立場文)'이다. 하필 아리송한 '입장'이란 말부터 걸린다. 어떤 일에 관한 견해나 방침을 널리 드러냈으니 '성명(聲明)'이라 하면 될 법한데. 더 께름칙한 것은 '사임(辭任)토록 하겠다'는 말뜻 또한 알쏭달쏭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조심하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쓰거나 말한다. 그릇된 표현이다. 이때 '-도록'은 '어떤 상태나 방향으로 이끎'을 나타내서, 자기가 아니라 제삼자로 하여금 그런 행위를 하게 만든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잘 쓰지 않는 표현일뿐더러, 문법을 꼬장꼬장 따지고 들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행위 주체가 본인이면 '조심하겠다', 제삼자면 '조심시키겠다' 해야 바람직하다.

'입장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임토록 하겠습니다'는 우선 사임하는 주체를 착각할 수 있다. 잘못 쓰는 말투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대통령이 사임하겠다는 뜻 아닌가. 물론 금감원장을 물리치겠다는 취지이니 주체는 금감원장이다. '사임시키겠습니다' 하면 그만이었을 것을. 사임 대신 '해임(解任)토록 하겠습니다' 했다면 덜 헷갈렸겠다. 그마저도 문법에 맞는 표현이 아니다. 결국 '해임하겠다'가 가장 명쾌(明快)하지 않았을까. 사임이니 해임이니 왈가왈부는 정치 쪽 몫으로 남겨두자.

추풍낙엽(秋風落葉)이 아니라 춘우낙화(春雨落花)인가. 한바탕 봄비에 벚꽃마저 온통 흩뿌리니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이형기 '낙화') 있는지.



양해원 글지기 대표
입력 : 2018.04.27 03:10